최고의 숙박시설을 위한 장인 정신
검은색과 흰색 타일의 조화가 돋보이는 미러 스위트(Mirror Suite) 룸 (자료: 소설호텔)
소설호텔은 그 이름부터가 독특하다. 언뜻 문학 장르인 소설을 떠올리기 쉽지만, 소설호텔은 작을 소(小), 눈 설(雪)을 쓰는 절기 소설(小雪)에서 이름을 따왔다. 소설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올해는 11월 22일이다.
소설호텔을 시작하게 되기까지
서영우 대표의 부티크 호텔 건축은 소설호텔이 처음이 아니다. 서른 즈음에 시작한 숙박업 설계, 건축, 운영 경력이 10년 정도 되었을 무렵, 역삼동 사월호텔 프로젝트 시공이 들어왔다. 10년 간 이어진 10여 개의 모텔 건축과 운영에 지쳐있던 그에게 사월호텔 프로젝트는 새로운 터닝포인트와도 같았다.
사월호텔 건축주의 독특한 콘셉트와 디자인에 매료된 그는 매우 유쾌한 작업 과정을 거쳐 지금도 업계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호텔을 완공한 이후에도 항상 아쉬움이 남았다고 한다.
“작은 건물 외관 사이즈로 인한 제한적인 객실 수, 호텔의 위치, 그리고 부대시설의 부재 등으로 그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한국을 찾는 외국 친구들에게 소개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서영우 대표는 5성, 6성급의 규모만 큰 특색 없는 특급 호텔과 비즈니스 호텔, 그리고 러브 호텔만이 존재하는 국내의 모텔 시장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생각을 펼쳐 보이고자 소설호텔을 건축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오너의 감각과 취향이 묻어 있는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부티크 호텔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러브 호텔을 포기했을 때 돌아오는 수익률의 손해와 규제 등 여러 가지 단점이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감수하고 제대로 된 부티크 호텔이란 걸 한번 만들어 보고 싶어졌습니다.”
대형 호텔부터 비즈니스 호텔, 모텔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부티크 호텔’을 표방하는 현 시대에서 서영우 대표가 생각하는 부티크 호텔이란 ‘오너의 취향이나 감성, 감각 등이 호텔이 위치한 지역의 여러 특징과 함께 어우러져 지속적인 가치를 만들어 내는 호텔’이다.
그는 점점 모호해지는 부티크 호텔의 개념 속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를 소설호텔을 통해 실현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정형화 되거나 획일적이지 않고, 그러면서도 모텔보다는 더 양성화될 수 있는 어떤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공간 안에서 문화, 예술이 함께하는 곳이 서영우 대표의 부티크 호텔이며, 소설호텔이 지향하는 바다.
“부티크 호텔이라 함은 그 공간 안에서 문화, 예술에 관한 어떠한 생산활동이나 창조적인 움직임이 있고, 그 호텔만의 감성과 향이 있어야 합니다. 획일화되고 규모가 큰 곳에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전시, 세미나, 공연 등 이런 재미있는 활동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에 더해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활동과 기억이 축적되는 장소가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부티크 호텔입니다.”
객실 화이트 디럭스(White Delux)의 벽면 디테일 (자료: 소설호텔)
디테일을 최우선 삼다
소설호텔을 다른 호텔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은 디테일이다. 시공 과정에서도 디테일을 최우선에 두고 작업했다. 화이트 디럭스(White Deluxe) 룸의 경우 돌 그 자체를 깨서 벽에 심었다. 건축이나 인테리어 관련 일을 하는 서영우 대표의 지인들조차 벽을 처음 봤을 땐 도배지를 찢어서 붙인 줄 알았다. 서영우 대표와 작업자들이 의도한 바가 정확히 구현된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 돌을 어떻게든 찢어 붙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캐드로 돌의 라인을 그린 뒤 물을 분사해잘라 봤습니다. 그러니까 가위로 자른 것처럼 어색해지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지, 현장에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을 시공하시는 분들이 그라인더로 갈아내자고 하셨죠. 그라인더를 세워서 위에서 돌이 부서져 나가는 것처럼 갈아내면 될 거 같았거든요.”
일반적인 호텔의 시공 과정이었다면 감히 시도할 수 없을 디테일이다. 돌을 하나하나 갈아내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이 곧 돈이고, 빨리 객실을 완공시켜 영업을 시작해야 그만큼의 이익을 더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호텔에는 곳곳에 많은 디테일이 있는데, 그 디테일 하나하나가 장인정신으로 일하는 작업자들과 머리 맞대고 풀어낸 결과물이다. 직접 현장에서 논의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다 보니 나중에는 다수의 작업자들이 빠르게 디테일을 이해하고 동의해 무언가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작업하게 됐다. 건축주와 건축가가 상호 간의 이해와 동의로 이야기를 하나씩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 소설호텔이다.
“그간 우리가 겪었던 많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 인해 이러한 결과물이 나왔고, 그런 점에서 저는 뿌듯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소설호텔은 각각의 특징을 가진 최상층 펜트하우스 2실, 스위트 24실, 디럭스 26실의 규모를 갖추고 있으며 12가지 타입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서영우 대표는 돔 스위트(Dome Suite) 룸이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저는 이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건축주이자 시공자로서 이 프로젝트를 해본 것이 큰 경험이라는 말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 소설호텔이 부티크 호텔로서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랍니다.”
서영우 대표는 어린 시절 주택 건축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공사판으로 이사를 다녔다. 인부들이 퇴근한 빈 공사장이 곧 그의 집이자, 놀이터였다. (자료: 소설호텔)
앞으로 새로운 콘텐츠 선보일 것
서영우 대표는 소설호텔이라는 공간 안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일환으로 오픈 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축가에 대한 강의가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알바로 시자(Alvaro Joaquim de Melo Siza Vieira)와 가우디(Antoni Gaudi) 같은 건축가에 대한 강의를 4~5회에 걸쳐 진행 중이다. 또 지하 1층 전시문화 대관공간에서는 공연과 요리강좌도 진행한다. 수요가 적어 대규모 공연장에서는 열기 힘든 틈새 문화산업의 장을 마련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다.
이외에도 요즘 서영우 대표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지방 소도시에 소설의 53번째, 54번째 객실을 만드는 것이다. 서울과 비교하면 낙후됐지만 많은 콘텐츠와 매력을 가진 지역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팔고 있으며, 곧 그 결과물이 세상에 나올 것이라고 한다.
”지방의 균형발전, 뭐 이런 대단한 걸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제가 찾아내고 발견해낸, 어쩌면 곧 사라지고 변형될 위기에 처한 한국 근대건축물의 원형 복원과 보전에 일부분 역할을 한다는 보람 때문입니다. 또 그 결과물을 소설호텔을 아껴주시는 고객과 같이 공유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신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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